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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론

퇴끼 2019. 3. 29. 19:38
유한계급론 서평

이 책은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처음 밝히는 거지만 제 전공이 경제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블런 효과를 강의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경제학도 범위가 워낙 넓다보니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는 원칙에 위배된다 정도로만 배우고 넘어갑니다.

원래 시장에서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됩니다.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가격이 급등하고, 수요가 적은데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하락합니다. 물론 현실에선 공급이 많아도 절대로 가격을 내리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듯이, 많은 현실 경제 상황이 경제학 이론을 그대로 따라가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시장이란 이상적인 상황이거든요. 그렇기에 경제학 이론과 실제 현실 경제 간의 괴리감이 생깁니다. 경제학자들의 경제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도 경제학의 기본 가정부터가 너무 이상적이기 때문에 당연한 겁니다.
그렇기에 사회 현상을 관찰하면서 현실에서 발견한 점을 가지고 이론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스타인 베블런이 쓴 유한계급론도 이러한 측면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 저서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두려워하는 그래프나 수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리뷰를 쓰신 많은 분들이 언급하신 인문학 혹은 철학 서적을 읽는 것 같다는 평이 아주 정확합니다.

인류의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그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유리했던 특징들-호전적인 성격, 경쟁심-로 생존했던 인류들의 본성을 노동과 소비를 통해 서술합니다.

수렵채집 시대때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싸움과 약탈의 역사였다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약탈의 대상이 생존을 위한 동물에서 다른 가치들로 바뀌었다는 점만 제외하면요. 그런 싸움과 약탈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호전적인 성격입니다. 싸움을 걸고 싸움을 걸어오면 받아쳐야지만 싸움도 일어나겠죠.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긴 자는 전리품을 획득합니다. 수렵채집 시대였다면 동물의 고기이고 그 이후라면 패자에게서 빼앗은 무언가겠지요.
싸움을 잘하는 자는 수렵채집 시대에선 훌륭한 고기 공급원으로써 존경받고, 이후에도 여러 형태로 존경받습니다. 그런 그들은 존경을 받기 때문에 여러 자잘한 의무와 일들에서 면제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유한계급입니다.
생산활동 즉 돈은 벌지 않고 소비만 하는 계층인 유한계급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돈 많은 백수'입니다. 굳이 일할 필요없는 유한계급은 자신의 여유로운 생활을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워라밸이란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일과 여가 사이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상황에서, 자기는 워크 없이 라이프만 즐긴다고 월급의 노예들에게 과시하는 돈 많은 백수들이라고 생각하면 유한계급론이 좀 더 쉽게 와닿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유한계급들이 과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여가생활의 과시와 과시적 소비입니다.
여가생활의 과시는 돈 많은 백수가 '백수'라는 측면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난 일을 안하니 시간이 넘쳐서 해외여행도 다니고, 파티도 개최하고, 사회적으로 우아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배우는 식으로요.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거나, 레슨비가 비싼 악기를 배우거나 시간이 넘쳐난다는 게 행동에서 드러난다거나요. (인 타임이란 영화가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이 곧 화폐인 세상에서 주인공은 가난한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달리는 게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고, 상류층이 거주하는 구역에 갔음에도 그 습관 때문에 상류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추적자들이 쉽게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시적 소비는 돈 많은 백수가 '돈 많은'이라는 측면을 과시하는 것이고요. 그 상품의 실제 가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연비가 나쁜 스포츠카, 수납이란 용도로썬 턱 없이 부족한 명품가방, 평소에 입고 다니기엔 난해해보이는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들. 상품의 기본적 용도만을 생각하면 금전적 가치가 낮은 것들이죠.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돈에 얽매이지 않으니 가성비나 용도따윈 신경쓰지 않고 돈낭비해도 나의 재정엔 눈꼽만큼도 타격이 없다를 보여주기 위해 돈 많은 백수들은 소비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곧 가치를 표현하는 거지요. 돈낭비처럼 보이는 물건에 보통 사람은 엄두내기 힘들 상당한 돈을 들여 자랑하는 것. 그것이 과시적 소비입니다. 그리고 소위 '명품들이 비쌀 수록 잘 팔리는 이유'이기도, 또 리미티드 에디션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품절되는 이유입니다.

100년도 전에 쓰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도 적용되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사회 현상이 이론과 다른 결과를 낳는 건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본성 때문이란 걸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번역이 너무 딱딱하게 되어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으나 자주 나오는 단어들을 좀 더 직관적인 단어로 번역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제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를 설명해두긴 했는데 본문만 읽으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자주 등장하는 용어를 풀이한 부분이 있다는 걸 표기한다면 많은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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